유학, 여행이 아닌 일상
타우랑가의 랜드마크 마운트 망가누이. 해변을 따라 형성된 타우랑가 시내가 한 눈에 들어온다. 타우랑가 해변은 뉴질랜드인들에게도 인기 많은 관광 명소다.
왜 꼭 영어를 잘해야 하는가?
유학에 그렇게까지 많은 비용을 들일 가치가 있는가?
가족이 떨어져 사는 것이 괜찮을까?
한국에서도 잘 살 수 있는데 굳이 어린아이를 데리고 먼 나라까지 가야할까?
조기유학을 생각할 때 마주하게 되는 질문들이다. 아쉽게도 정답은 없다. 아이들은 개별 인격과 개성을 갖춘 인격체지만 부모의 교육관은 아이들에게 직접적으로 영향을 미치게 마련이다. 조기유학도 마찬가지다. 부모의 마음가짐과 결심, 그리고 준비. 삼박자가 잘 갖춰져 첫 단추를 잘 꿸 때 유학생활은 목표점을 향해 순탄하게 출항할 수 있다.
내 사례를 들어 조기유학을 결심하고 비행기에 오르기까지의 과정을 소개한다.
미세먼지에 갇혀 외출하기 어려웠던 봄날. 우리 가족은 모처럼 세부로 가족여행을 떠났다. 오랜만에 보는 파란하늘, 바닷가에서 행복해하던 아이를 보며 우리의 오래 전 다짐을 떠올렸다. 아이에게 큰 세상을 만나게 해주자고. 전 세계를 다니며 뜻을 펼치고 친구를 사귀며 인생을 누리게 해주자고. 그러려면 언어가 필요하니 영어를 스트레스가 아닌, 공기처럼 자연스럽게 흡수하게 해주자는 다짐이었다. 우리는 일상에 젖어 조기유학을 더는 미루지 않기로 했다.
부부간의 충분한 합의는 중요하다. 유학에 따른 모든 과정과 결과를 둘이 함께 감당해야 하기 때문이다. 이 과정이 충분히 이뤄진 후 다음 단계로 들어설 것을 추천한다. 일단 우리는 한국에 돌아와 재빨리 조기유학 관련 자료를 검토했다. 가장 눈에 띈 곳이 뉴질랜드였다. 자국에 머무는 만 3세~5세, 우리나라 나이로 5세~7세 모든 아이들에게 주 20시간~30시간 유치원 무상교육을 제공한다는 사실이 너무 반가웠다. 그것도 주입식 학습중심이 아닌 전인교육으로 유명한 뉴질랜드의 교육을 무상으로 받을 수 있다니... 여러 사진을 보며 유치원 보다 더 눈이 간 것은 합성인가 의심될 정도의 파란하늘이었다. 초록 잔디 위 새파란 하늘, 이 축복을 일상으로 누리는 아이들의 미소. 우리아이도 저 사진 속에 들어가 있으면 좋겠다 라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타우랑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바닷가 놀이터. 뉴질랜드 겨울 무렵인 2016년 6월초, 낯선 놀이터에서 약간은 경계하는 모습으로 놀고 있는 아이. 아이에게는 어떤 내일이 펼쳐질까?
머물 도시로는 타우랑가를 선택했다. 바다를 좋아하는 내겐 일단 아름다운 해변 도시라는 점이 매력으로 다가왔다. 1년 내내 일조량이 풍부한 화창한 해양성 기후, 초등학교 한 반에 한국 유학생을 한 명만 두는 정책, 비교적 지진과 쓰나미로부터 안전한 점도 마음에 들었다.
유학 절차는 비교적 간소했다. 일단 무비자로 뉴질랜드에 입국해 공항에서 3개월 방문비자를 받으면 된다. 보통 6개월 방문비자를 연장 할 수 있으니 9개월 동안은 가족 모두 체류할 수 있다. 이후 유치원을 계속 보내려면 부모가 학생비자가 주어지는 학원에 등록하면 된다. 만 5세가 돼 아이가 학교에 입학하게 되면 부모 중 한 명에게 가디언 비자가 나오니 별도의 학원 수강이나 절차 없이 체류할 수 있다. 다른 영어권 국가와 비교했을 때 절차가 간소했다. 그래! 이곳이다. 자, 이제 갈 곳이 결정됐으니 일상 하나하나를 설계해야 될 차례다.
일단, 아무도 모르는 낯선 이국땅에 아이들과 떨어졌다고 가정해보자. 남편이 동반하는 경우도 있지만 남편은 한국에 남아 생계를 책임지고, 엄마 혼자 아이들을 데리고 오는 경우가 대다수다. 이제 엄마 혼자 총 책임자가 돼 아이들을 이끌어야 한다. 당장 비행기에서 내려 어디서 셔틀버스를 타서 목적지까지 가고, 어느 집에 머물 것이며, 어느 유치원에 가야하며, 이동은 어떻게 해야 할까? 이 모든 것들이 출국 전 완벽하게 세팅돼 있어야 한다.
인터넷 검색을 통해 타우랑가에는 한국인들이 운영하는 현지 유학원 몇 곳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됐다. 단순히 학교와 주거지만 연결해 주는 것이 아닌 비자, 학교인터뷰 지원 등 현지 생활을 돕는 정착서비스가 어느 정도 안정되게 자리 잡힌 듯 했다. 한 곳을 골라 꾸준히 연락하며 살아갈 모습을 직접 설계했다.
보통 초등학교에 입학할 경우 학교 선정부터 하지만 유치원은 원하는 지역을 고른 뒤 현지 유학원 직원과 함께 인근의 유치원 몇 곳을 직접 가보며 고르는 경우가 많았다. 자동차 역시 현지 중고차 시장에서 직접 타보고 사는 경우가 많다고 해서 이 두 가지는 출국하고 생각하기로 했다. 당장 급한 건, 살 집이었다.
물론 시간과 노력을 더 들일 수 있다면 유학원 도움 없이 ‘트레이드미’ 등 온라인 중고거래 사이트를 통해 집을 알아볼 수 있다. 유치원, 차량 등도 발품을 팔며 알아보면 된다. 다만 그 노력이 아이에게 집중할 수 있는 시간을 뺏게 되는 경우가 생기게 때문에 깊이 있게 생각해보길 권한다.
뉴질랜드의 주거형태는 대부분 단독주택이다. 일조량이 풍부하고 온화한 기후 덕에 집집마다 야자수와 과일나무가 잘 자란다.
뉴질랜드에는 아파트가 거의 없다. 대부분 단독주택에 한 가족이 거주한다. 아름드리 야자수가 반기고, 온화한 기후 덕에 정원에는 과일나무가 즐비하다. 제각각 집들도 개성 있게 지어져 집 구경만 해도 한참이 걸린다. 하지만 단독주택인 까닭에 집값을 무시할 수 없다. 전세가 없고, 대부분 매주 주세를 자동이체로 지불한다. 학군과 인근시설 등에 따라 가격이 천차만별이긴 하지만 보통 방 3개, 화장실 2개 있는 단독집 기준 매월 140만 원~200만 원 정도는 생각해야 한다. 물론 이 가격대 아래와 위로도 폭은 넓지만 다수가 택하는 수준에서다.
나처럼 아이가 한 명일 경우는 잘 찾아보면 더 작은 집도 구할 수 있지만, 기회가 많지는 않다. 수도 요금과 전기 요금이 포함되지 않은 경우도 많기 때문에 이 또한 살펴봐야 한다. 뉴질랜드에서는 잔디도 의무적으로 깎아야한다. 외국 영화를 보면 잔디 깎는 모습을 흔히 볼 수 있는데 이들의 일상이기 때문인 것 같다. 엄마 혼자 잔디 깎고 잡초 뽑는 게 힘들기 때문에 전문 업체에 의뢰하는 경우도 많다.
집 얘기를 좀 더 해 보겠다. 나도 불편을 겪었으며 주변에서 안타까운 경우도 많이 봤기 때문에 할 말이 많다. 유학은 생활이다. 여행이 아니다. 유학이라는 큰 목표가 있지만 일단 해외든 어디든 주거공간은 삶의 메인무대다. “좁고, 힘들어도 돈 아끼려면 참고 살아야지...”라는 생각은 옳기도 하지만 매우 위험하다.
낡고 난방이 잘 안 되는 경우, 두 가족이 함께 사는 경우 등 한국과 차이가 많이 나는 일상을 살아갈 때 불편함이 영혼을 잠식할 수 있다. 실제 아이 영어공부 때문이 아닌 살고 있는 집이 싫어서 마음의 정착을 하지 못하는 경우도 많이 봤다. 잔디관리도 본인의 힘으로 하려다 손목에 무리가 가서 지병이 된 엄마들도 있다. 물론 빠듯한 가계상황을 생각하면 아껴야하지만 허리띠를 졸라맬 때와 아닐 때를 지혜롭게 선택할 필요가 있다.
이웃집에서 귤은 따고 있는 아이. 오렌지, 레몬, 귤, 아보카도, 피조아, 자두 등 사시사철 정원에서 자란 과일을 따먹고 이웃과 나누는 즐거움이 있다.
유학가정의 경우 귀국시 집과 차, 살림살이를 동시에 팔고 떠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유학원 사이트를 이용해 한꺼번에 해결할 수도 있다. 보통 12월 중순 이후에 방학을 하고 1월 말에 새 학년이 시작되기 때문에 시기를 잘 선택하면 일거리를 줄일 수 있다. 누가 사용하던 살림이 싫으면 웨어하우스, 케이마트 등 창고형 매장에서 새 물건을 구입한 뒤 귀국할 때 되팔고 오는 방법도 있다. 뉴질랜드의 계절은 정확히 우리나라와 반대다. 12월은 한여름이다. 이 점을 감안해 옷을 챙기면 편리하다. 다음 계절 옷은 차후에 택배를 이용해 받으면 된다.
일단 살 곳과 아이가 교육받을 곳에 대한 윤곽이 나오자 나는 옷가지를 싸들고 거침없이 비행기에 올랐다. 미지의 세계를 향한 두려움 반 설렘 반의 항해지만, 나는 강해질 수밖에 없었다. 옆에 나만 믿고 바라보는, 유학생활이 무엇인지 짐작조차 하기 어려운 작은 아이가 내 손만을 붙잡은 채 따라오고 있기 때문이다. 이 아이에겐 정말 어떤 내일이 기다리고 있을까? 아이의 성장기는 제3화 ‘뉴질랜드 유치원 생활’에서 계속된다.
*Talk! Talk! Kiwi English
뉴질랜드인들을 애칭으로 키위(Kiwi)라고 부릅니다. 키위라는 과일 때문이 아니라 뉴질랜드에서만 서식하는 키위라는 새가 있기 때문이죠. 키위들이 즐겨 사용하는 구어체 위주의 영어를 소개합니다. 뉴질랜드에 가면 자주 들을 수 있으니 미리 익혀두시면 좋아요.
1. cool 좋은, 멋진~
뉴질랜드인들이 정말 자주 사용하는 말입니다. 우리나라에서도 ‘쿨~하다’라고 하면 뭔가 멋지고 세련된 것을 이야기하죠? 좋을 때, 무언가 멋질 때, 마음에 들 때 “Cool~”이라고 외쳐보세요.
2. Bring a plate 음식 한 접시를 가져오세요~
왜 접시를 가지고 오라고 하지? 접시가 부족한가?라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여기서 접시(plate)는 음식이 담긴 접시를 말합니다. 뉴질랜드에서는 학교, 유치원, 이웃, 친구 모임 등에서 포트럭 파티(Potluck party)를 자주합니다. 각자 음식을 가져와서 나눠 먹는 모임이죠. ‘접시를 가져오라’고 직역해 음식 없이 빈 접시만 가져오는 경우가 생기지 않도록 주의하세요.
오세진 방송작가
출처 : 경기일보(http://www.kyeonggi.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