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희 비전 유학원을 통해 타우랑가에서 2년 정도 조기유학을 마치고 2018년도에 귀국한 가족의 글입니다. 출국준비부터 귀국까지 모든 과정을 상세히 다뤄 조기유학을 준비하시는 가족에게 도움이 될 것이라 여기며 경기일보에 연재된 글을 소개해 드립니다.
몸의 건강을 중시하는 뉴질랜드의 교육. 아이들은 수업 시간은 물론 쉬는 시간, 점심 시간에 수시로 운동장에 나가 다양한 스포츠를 즐긴다.
운동에 큰 흥미가 없던 아이가 킥보드를 타고 사방을 누빈다. 바닷가에 놀러갈 때도 마트에 갈 때도 킥보드를 대동한다. 이유를 물으니 학교에서 자전거와 킥보드 등을 타고 달리는 트라이애슬론 대회가 열린다고 한다. 며칠이 지나니 밤낮으로 춤을 춘다. 학교에서 연극을 하는데 아이의 반은 스머프 댄스를 선보인단다. 마켓데이를 앞두고는 동전지갑에 5달러를 넣어가야 한다며 들떠있다. 돌이켜보니 교과서를 떠난 실제 체육, 예술, 경제 활동이다. 학교란 공부 뿐 아니라 몸과 마음을 건강하게 하는 다양한 활동이 병행되는 곳임을 깨닫게 하는 곳, 바로 뉴질랜의 초등학교다.
만 5세가 돼 초등학교에 입학한 첫 날. 강당에서는 신입생을 환영하는 행사가 열렸다. 수백 명의 아이들이 모여앉아 신입생을 위해 환영 노래를 불러주고, 신입생들은 상기된 얼굴로 그 사이를 지났다. 따뜻한 신입생 환영회도 좋았지만 사실 더욱 눈길을 끈 것은 그렇게 많은 아이들이 모여 있는데 아이들끼리 떠드는 소리가 거의 안 들린다는 것이었다. 놀면서 자유롭게 자란 아이들이라 무질서할 것 같았는데 오히려 질서와 예절이 몸에 밴 듯한 이 장면은 무엇일까? 아이의 학교생활을 보며 서서히 이해할 수 있게 됐다.
일주일에 한 번씩 전체 학생이 모이는 어셈블리. 발표를 맡은 학년의 학생들은 모두 무대 위로 올라 준비한 춤과 노래 등을 선보인다.
학교에는 매 주 ‘어셈블리’라고 불리는 우리나라 ‘조회’ 비슷한 시간이 있었다. 차이라면 학생들이 주최가 된다는 것. 매 주 학년별로 순서를 맡아 아이들이 무대 위에 올라 발표도 하고 준비한 공연을 선보인다. 이 시간을 위해 각 반별로 미술 작품도 만들고 노래와 춤도 배우곤 했다. 서로 협력하고, 마이크를 들고 발표도 해보며 아이들은 그렇게 자라고 있었다.
내 아이가 참여하는 첫 어셈블리 때 담임선생님은 “아이에게 발표를 하고 싶냐고 물어보니 싫다더라고요. 준비가 안 된 듯 하니 다음 어셈블리 때 다시 물어볼게요”라고, 두 번째 어셈블리 때는 “아이가 이번에는 할 수 있다고 했어요”라고 상세히 설명해줬다. 남들 앞에 쉽사리 나서지 못했던 아이가 어느덧 마이크를 쥐고 발표도 하고, 신바람 나는 춤사위도 선보인 것은 가족 역사에 길이 남을 일이다.
학교는 이벤트와 놀이의 연속인 듯 보였다. 공지사항을 꼼꼼히 챙겨보지 않으면 놓치기 쉬울 정도로 다채로운 활동이 계속됐다. 모든 행사는 부모도 자유롭게 와서 보거나 자원봉사자로 참여할 수 있기 때문에 더욱 가까이 아이를 관찰하며 학교생활을 파악할 수 있었다. ‘비치데이’에는 학교 앞 바닷가로 걸어가 줄다리기와 이어 달리기 등을 하며 한나절을 논다. ‘트라이애슬론, 또는 듀애슬론 데이’라 불리는 날에는 자전거와 스쿠터를 다고 정해진 코스를 돌고 난 뒤 달리기를 해 마무리하는 숨 가쁜 여정이 이어진다. 친구와 선생님, 부모님의 환호에 힘입어 대부분의 아이들은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완주한다.
학부모와 지역주민이 함께 즐기는 크리스마스 축제. 전교생이 참여해 그동안 배운 장기를 선보이고 어른들은 다양한 먹을거리, 즐길거리와 함께 편안하게 축제를 즐긴다.
두뇌 뿐 아니라 몸의 건강한 발달 또한 중시하는 나라다보니 체육 행사가 많이 열린다. 1년에 두 세 차례씩 ‘펑키 펀 데이’를 열어 수업 대신 실내체육관을 대여해 축구, 하키, 농구, 달리기 등 각종 스포츠를 즐긴다. 이 때 2~3개 학교가 함께 와서 경쟁을 펼치는데 같은 학교 아이들의 협동심이 빛을 발한다. 집에서 학교가 가까워 오며가며 학교를 바라보면 운동장은 늘 아이들로 생기가 넘쳤는데 백미는 잔디 위에서 맨 발로 축구하는 아이들의 모습이다. ‘어려서부터 맨발로 다녀서 발바닥이 두꺼워졌나?’ 스스로 생각해보곤 했다. 심지어 비가 내리는 날에는 물웅덩이가 생겼다며 장화를 신고 첨벙거리는 아이들. 노는 것의 진수를 보여주는 뉴질랜드 아이들이다.
‘디스코데이’는 아이들에게 단연 인기다. 학교에서는 다양한 간식과 야광 팔찌, 야광 공 같은 것을 준비하는데 시작 전부터 흥분의 도가니다. 잠시 후 화려한 조명과 음악이 켜지면 아이들은 약속이라도 한 듯 무대 주변으로 모여든다. 무대 위, 아래에서 아이들이 몸을 풀기 시작하는데 혹시나 망설이던 아이들은 선생님들을 보며 자극을 받는다. 선생님들이 솔선해 무대 위로 올라 준비한 춤을 선보이고, 잠시 후면 선생님, 아이들, 부모가 하나가 돼 춤의 열정을 폭발한다. 내 아이도 어느새 듣도 보도 못한 막춤을 추고 있다.
학교 대신 실내체육관으로 운동하러 가는 날. 다른 학교 학생들과 하키와 농구, 축구, 이어달리기 등을 겨루며 에너지를 폭발한다.
춤과 노래에 끼가 있는 아이들이라면 ‘학생 전체 연극’에서 실력을 마음껏 펼쳐 보일 수 있다. 하나의 큰 주제를 갖고 모든 학생이 참여하는 연극인데 내 아이의 반 아이들은 스머프 노래와 댄스를 맡았다. 고학년 아이들은 브레이크 댄스와 디스코를 추기도하고 학교 선택 과목인 드라마 수업을 듣는 학생들은 연기로 무대를 장악했다. 전교생이 함께하는 하나의 작품! 열심히 참여하는 아이들의 모습은 박수갈채를 자아냈다.
학교에서 마켓이 열리는 날, 아이들은 아침부터 신바람이 난다. 엄마에게 돈을 달라고 당당히 요구할 수 있기 때문이다. 머핀과 슬러시 등 음식과 장난감, 학용품 등이 기다린다. 5달러, 우리나라 돈 4천원 정도의 돈을 받아 아이들은 머리를 써가며 돈을 쪼개 쓴다. 정해진 돈만 써야 된다는 규칙이 있기 때문이다. 첫 마켓에서 장난감만 두 개 사온 아이는 두 번 째 마켓에서 음식과 장난감, 친구 선물까지 골고루 샀다.
식물의 성장을 알아보기 위해 학교 근처 텃밭을 찾은 아이들. 직접 씨앗을 심어 물을 주고 기르며 수확의 기쁨도 맛본다.
식물의 성장과정을 알아보기 위해선 ‘커뮤니티 가든(마을 텃밭)’으로 향한다. 좋은 토양을 일구는 방법과 씨뿌리기부터 퇴비 만들기까지 농장 관리인들에게 설명도 듣고 직접 만지며 실습도 했다. 곳곳에 향긋하게 열려 있는 계절과일도 맛본다. 이곳은 지역주민들에게도 개방돼 있어 누구든 와서 심고 거둘 수 있는 기회를 준다. 덕분에 태어나 처음으로 당근과 브로콜리, 딸기 등의 씨를 사서 아이와 뿌리고 물을 주며 가꿔봤다. 뉴질랜드는 워낙에 기후와 토양이 좋아 특별히 관리 하지 않아도 식물들이 잘 자라는 편이다. 수확의 기쁨 때문인지 아이는 쳐다보지도 않던 브로콜리와 당근 등 각종 야채를 좋아하게 됐다.
오늘은 영화보러 가는 날 ‘무비 데이’다. 아이가 고민에 빠져 있다. 영화를 보며 아이스크림과 팝콘 중 하나만 골라 먹을 수 있는데 아직 결정을 못했다고 했다. 결과는? 대부분이 선택한 팝콘! 평소 좋아하는 애니메이션을 친구들과 함께 공감하며 볼 수 있으니 재미가 배가 됐을 듯하다. 학교 근처 영화관에 가서 영화 관람을 하고 근처 공원까지 가서 간식 먹고 실컷 뛰어 논 하루, 아이가 손꼽아 기다릴만하다.
‘학예 발표회’와 ‘크리스마스 행사’ 등 다른 학교와 지역 주민이 함께하는 큰 축제도 열린다. 뉴질랜드 원주민인 마오리족의 노래와 춤, 전통을 경험하는 기회가 되기도 한다. 아이들은 준비한 공연을 선보이고 부모는 편안하게 자리를 잡고 앉아 준비해온 와인과 맥주, 음식을 즐긴다. 놀이기구와 에어바운스, 다양한 푸드트럭 등 놀거리와 먹을거리가 풍부하다. 아이들은 친구들과 어울려 놀고 구경하느라 여념이 없고 오랜만에 만난 부모들 또한 대화를 나누고 친해지는 계기가 된다.
철인 삼종 경기, 또는 철인 이종 경기 같은 트라이애슬론 행사. 자전거와 킥보드 등을 타고 트랙을 돈 뒤 달리기를 하며 골인 하는 흥미진진한 시간.
초등 교과 과정이라는 큰 틀 안에서 이뤄지기 때문에 학교마다 약간의 차이는 있지만 비슷한 활동이 전개된다. 아이의 학교생활을 보며 ‘교육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질문을 여러 차례 던졌던 것 같다. '학교=공부'라는 공식은 이곳에서는 안 통했다. 주입식 학습, 교과서 중심이 아닌 다양한 활동을 통해 놀며 경험하며 배워가는 교육. 그 안에서 자연스레 발견되는 아이들의 재능. 또 직접 경험은 아이들을 스스로 깨닫게 하며 성숙한 모습으로 다듬어가는 좋은 밑거름이 됐다. 서두에 언급한 질서를 잘 지키는 뉴질랜드 아이들의 모습 역시 잦은 단체 활동에 의해 스스로 예절의 소중함을 터득한 결과물로 보였다.
10주 동안 학교에 가면 2주의 방학이 기다리기 때문에 충분한 휴식이 아이들을 더욱 활기차게 만들어준다. 그렇다면 잦은 방학동안 아이들은 무엇을 하며 지낼까? 아름다운 자연의 품속으로 여행을 떠나는 경우가 대다수다. 청정국가라 불리는 곳, 사람보다 양이 많아 보일 정도로 사람과 자연이 조화를 이루며 살아가는 곳. 아름다운 뉴질랜드 여행기는 ‘제7화 뉴질랜드 자연, 어느 정도길래...’ 편에서 이어진다.
*Talk! Talk! Kiwi English
뉴질랜드인들을 애칭으로 키위(Kiwi)라고 부릅니다. 키위라는 과일 때문이 아니라 뉴질랜드에서만 서식하는 키위라는 새가 있기 때문이죠. 키위들이 즐겨 사용하는 구어체 위주의 영어를 소개합니다. 뉴질랜드에 가면 자주 들을 수 있으니 미리 익혀두시면 좋아요.
1. Flat white: 플랫 화이트, Long black: 롱 블랙, Short black: 쇼트 블랙
커피 좋아하시나요? 커피숍에 가면 흔히 보게 되는 커피 종류들입니다. 뉴질랜드는 커피 맛이 좋기로 유명한데요. 한국인들이 많이 마시는 ‘아메리카노’는 없는 곳이 많습니다. 뉴질랜드와 호주인들은 ‘플랫 화이트’를 많이 마시는데요. 카페 라테와 카푸치노 보다는 우유 거품이 적은 진한 맛의 커피입니다. ‘숏 블랙’은 ‘에스프레소’ 정도의 진한 커피, ‘롱 블랙’은 물이 좀 더 들어간 블랙 커피인데요. ‘롱 블랙’도 ‘아메리카노’ 보다는 맛이 현저히 강하니 따뜻한 물을 좀 달라해 섞으면 ‘아메리카노’와 비슷한 느낌으로 즐길수 있답니다.
2. Kia Ora: 안녕하세요.(마오리어)
뉴질랜드의 원주민들을 마오리라고 부르는데요. Kia Ora(키아 오라)는 마오리어로 “안녕하세요.”라는 뜻입니다. 공항, 학교, 식당을 포함해 뉴질랜드 곳곳에서 보고 듣게 될 말입니다. 뉴질랜드는 마오리 전통을 존중해 유치원, 학교 등에서도 마오리어와 노래를 가르치고 전통 행사를 펼치기도 하는데요. 마오리어가 궁금하다면 우리나라에서 ‘비바람이 치던 바다, 잔잔해져 오면...’이라고 시작되는 ‘연가’의 원곡을 들어보세요. 마오리어로 아름다운 러브 스토리를 감상할 수 있습니다.
오세진 방송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