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우랑가 다문화센터에서 만난 친구들과의 소풍. 세계 각지에서 온 친구들과의 만남은 외로운 유학 생활에 큰 활력소가 된다.
아주 낯선 곳의 문을 열고 나가기 전, 두려움과 설렘. 도와주는 이 한 명 없이 내가 모든 것을 개척하고 만들어 나가야 할 때 우리는 주저하게 된다. 하지만 막상 마주하면 별 것 아니게 돼 버리는 경우가 많다. 유학생활도 마찬가지다. 내가 먼저 집 밖으로 나가 손을 흔들 때 마주 흔드는 손을 바라볼 수 있다.
뉴질랜드에서 아이가 학교나 유치원에 가면 보통 엄마에게 6~7시간 정도의 자유시간이 주어진다. 이 시간에 여기가 한국인지, 뉴질랜드인지 모를 정도로 은둔 생활을 할지, 아니면 밖으로 나가 현지 생활을 만끽할지는 철저히 의지에 달려있다. 나는 2년 남짓한 기간 동안 4개의 자격증을 따고, 골프를 칠 수 있게 됐고, 파티 문화를 만끽했다. 특별해서가 아니다. 한 발 내디딜 용기의 차이다.
현지 유학원을 통해 무작정 6세 아들을 데리고 오른 유학길. 아이가 유치원에 가고 혼자가 됐을 때 밀려들었던 외로움을 기억한다. 아는 사람이 아무도 없다는 것, 연락할 사람이 없고 밥 먹을 사람이 없다는 것은 쓸쓸한 일이었다. 아무도 내게 다가오지 않았다. 내 존재 자체를 모르기 때문이다. 홀로 바닷가를 거닐고, 여유를 만끽하는 것도 몇 주 지나니 시들해졌고, 귀중한 시간을 이렇게 흘려보내기에는 아까웠다. 결국 울타리 밖으로 나갈 결심을 했다. 폭풍 검색으로 알아낸 곳은 타우랑가 다문화 센터! 무료 초급, 중급 영어수업과 티타임이 있어서 무작정 합류했다. 탁월한 선택이었다.
아이들이 학교에 간 시간은 자기계발을 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다. 영어 말하기 전문가 과정을 이수한 뒤 기념촬영.
타국에서 유학이나 이민을 온 사람들이 많았고, 영어실력은 천차만별이었지만 공통점은 대부분 뉴질랜드를 탐험하고 싶고, 그 탐험에 함께할 친구가 필요하다는 것. 첫 수업 때 영어선생님은 함께 주말에 근처 조각공원으로 놀러 갈 것을 제안했고, 그때 함께한 사람들이 뉴질랜드 생활 내내 따로 연락하고 밥 먹고 파티에 함께 하는 친구가 됐다. 다문화센터에는 봉사가 생활화돼 있는 여러 뉴질랜드인들이 함께하며 외국인들을 도와주고 집으로 초청하기도 했다. 지역 공동체 안에 먼저 들어가는 것보다 다문화센터에서 현지 영어에 대한 감각도 익히고, 친구를 만드는 것이 새로운 사회에 적응하고, 즐길 수 있는 빠른 길일 수 있다.
어느 정도 타국 땅에 대한 낯섦이 해소됐다면 슬슬 지역 사회로 진출할 차례! 각 학교마다 엄마들이 참여할 수 있는 여러 봉사활동이 있다. 정원관리와 체육활동, 동아리활동, 각종 학교 행사 지원 등이다. 봉사를 통해 자연스럽게 어우러지면 마음이 좀 더 열리고, 친해지는 경우가 많다. 엄마들이 어울리면 아이들도 친구가 되는 법. 그렇게 나는 키위라고 불리는 현지인들과 친해지게 됐고 집에도 오가고 여행을 하며 우정을 쌓을 수 있었다. 특히 학교에서 정원관리 봉사를 하며 친해진 엄마가 있었는데 내 아이는 그 집에 가면 정원에서 달걀부터 찾았다. 닭들이 마당을 두루 다니며 매일 알을 낳기 때문이었는데 크기와 색깔이 다른 달걀은 어른인 내가 봐도 신기했다. 정원에서 양봉까지 해서 꿀을 받아오기도 했다. 외국인과의 의사소통이 두려울 수 있지만 외국인의 영어에 대해 비교적 관대하기 때문에 너무 겁먹을 필요는 없을 것 같다.
먹는 걸 좋아하는 내게 뉴질랜드인의 파티 문화는 이상적이었다. 각자 음식을 갖고 와 나누는 포트럭 파티와 할로윈 파티, 생일 파티 등 다채롭다.
학교가 아니더라도 현지인들과 어울릴 기회는 많다. 각 주민센터, 도서관마다 진행하는 동아리 활동과 프로그램에 참여해도 되고, 종교가 있는 경우에는 더 수월하다. 이방인에게 친절한 종교의 특성상 공동체 생활을 통해 상당히 환영받고, 관심 받는다는 느낌을 오랜만에 가져볼 수 있다. 대부분 소그룹 모임이 있기 때문에 주 1~2회 함께하며 마음의 위안을 얻고, 유학생활에 필요한 다양한 정보도 접할 수 있다. 영어실력 향상은 덤이다. 꼭 외국인들과 어울려야 좋은 것인가?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많은 비용이 드는 유학생활이 쉽지 않은 결정이었기 때문에 현지에서만 가능한 것, 누릴 수 있는 것, 도전할 수 있는 것은 최대한 해보고 싶었다.
주변에 외국 친구들이 많아지면 현지 적응이 완료된 것일까? 아무리 친한 외국인과 함께해도 채워질 수 없는 허한 마음이 있는 것 같다. 누구나 향수병과 자기 언어로 편하게 말하고 싶은 욕구가 있기 때문이다. 이때 한국 유학생 엄마나 이민자들과 어울려 한국 음식도 나눠 먹고 명절도 함께 보낸다면 비로소 내면이 꽉 찬 느낌이 든다. 아이들 학교나 교회, 한글 학교 등을 통해 한국인들 만날 기회는 많다. 개인적으로는 이 만남을 다문화센터와 현지인들과의 만남 이후로 미루는 것을 추천한다. 사람은 편한 것을 좋아하는 경향이 있어, 먼저 한국인들과 어울려 외로움을 다 해소해 버리면 외국인들과 만남은 점점 먼 길이 될 수 있다.
골프 천국이라 불리는 뉴질랜드. 한국에 비해 저렴한 이용료로 골프를 즐기며 뉴질랜드의 아름다운 자연을 만끽할 수 있다.
그동안 못했던 취미활동을 마음껏 해보는 최고의 기회이기도 하다. 스포츠는 담쌓고 살았던 내게 많은 사람들이 골프를 권했다. 뉴질랜드에서 골프를 안치고 가면 평생 후회할 것이라 했다. 매일 갈 수 있는 골프장 일 년 회원권이 우리나라 2~3회 이용료 정도고, 동네 곳곳에 있으니 이곳에서는 국민스포츠였다. 여성 건강 증진 프로그램으로 실시하는 단체 골프 수업을 2달 정도 듣고 골프장으로 직행했다. 실내 연습장과 스크린이 아닌 실제 골프장에서 골프를 시작하고 배운 것. 파란 하늘과 초록의 자연을 바라보며 걷는 것만으로도 힐링이 됐다. 아이 학교 가고 시간 날 때는 언제는 골프장으로 향해서 무료하거나 외로울 틈이 없었다.
뉴질랜드는 품질 좋고 향긋한 커피로도 유명하다. 동네 어디 커피숍을 가더라도 실패할 확률이 적다. 카페라테와 카푸치노 보다 좀 진한 플랫 화이트는 이곳의 국민커피다. 부드러운 우유 안에서 묵직하게 맴도는 커피 맛을 잊을 수 없다. 결국 커피를 직접 만들어보고 싶어 바리스타 코스에 등록했다. 한국보다 비용과 시간이 적게 들기 때문에 많은 유학생 엄마들이 도전한다. 실습 위주기 때문에 영어를 잘 하지 못 해도 충분히 들을 수 있다. 현지에서 좀 더 체계적으로 영어 수업을 들으며 영어 관련 자격증을 따는 것도 두고두고 잘했다 생각할 일이다.
향긋하고 맛 좋기로 유명한 뉴질랜드 커피. 많이 마시다 못해 직접 만들기에 도전! 바리스타도 많은 한국 유학생 엄마들이 도전하는 종목이다.
눈을 들어 주변을 돌아보는 여유를 가져보는 것도 좋다. 한국에서는 일하느라 바쁘게 살아왔기 때문에 놓쳤던 것이 많다. 뉴질랜드에서 숨을 고르며 새삼 알게 된 것이 꽃이 예쁘다는 것, 그리고 요리의 즐거움. 한 떨기의 꽃이 이렇게 아름다울 수 있을까? 길가에, 공원에 핀 꽃들을 발걸음을 멈춰 감상해보거나 곳곳에서 진행하는 원예(가드닝) 수업을 들어보는 것도 자연을 가깝게, 편안하게 느낄 수 있는 방법이다. 뉴질랜드인들은 튀기거나 삶는 요리보다는 오븐에 구운 요리를 많이 해서 케이크와 빵, 쿠키를 굽는 것이 일상이라 할 수 있다. 첫 요리로 스콘에 도전해 봤는데 생각보다 간단하고 맛있어서 놀랐다. 한국에 와서도 계속 빵을 구우리라 다짐했지만 막상 잘 안 되는 것 보면 그 나라의 분위기와 환경이었기에 가능한 일이지 않았나 싶다. 넘쳐나는 과일로 무농약의 레몬청, 키위청 등을 담가보는 것도 좋다.
엄마가 단순히 아이 유학에 따라온 희생양이 아니라, 스스로 즐기고 계발하기 위해 왔다고 생각한다면 상황은 달라진다. 천혜의 자연환경, 영어환경은 주어져 있다. 누리는 것은 본인의 몫이다. 이때의 경험은, 기억은 또한 앞으로의 한국생활을 더욱 풍성하게 만들어 주는 강한 힘과 바탕이 될 것이다. 이렇게 아이와 엄마가 새로운 땅에 잘 적응하고 지내기까지 어려움은 없었을까? 물론 즉시 귀국을 생각할 정도로 어려운 순간도 많았다. 어떻게 난관을 극복했는지는 '제9화 피가 되고 살이 되는 수난 극복기’ 편에서 이어진다.
뉴질랜드에서 처음으로 도전해 본 쿠키와 빵 굽기, 레몬청 만들기. 바쁜 한국 생활에서는 시도도 못 했던 일들이다.
*Talk! Talk! Kiwi English
뉴질랜드인들을 애칭으로 키위(Kiwi)라고 부릅니다. 키위라는 과일 때문이 아니라 뉴질랜드에서만 서식하는 키위라는 새가 있기 때문이죠. 키위들이 즐겨 사용하는 구어체 위주의 영어를 소개합니다. 뉴질랜드에 가면 자주 들을 수 있으니 미리 익혀두시면 좋아요.
1. EFTPOS(electronic funds transfer at point of sale): 뉴질랜드에서 통용되는 체크카드
물건을 구입하거나 현금을 인출 할 때 사용하는 체크카드. 신용카드 기능을 추가해 사용할 수 있습니다. 뉴질랜드도 우리나라와 마찬가지로 현금을 들고 다니기보다는 EFTPOS를 많이 이용합니다. ‘NO EFTPOS’는 ‘카드결제 불가, 현금만 가능’이라는 뜻이겠죠? 작은 가게나 길거리 마켓 등에서 종종 볼 수 있는 표현입니다.
2. catch up: (다음에) 만나다
‘catch up’은 ‘따라가다’ 또는 ‘따라잡다’라는 뜻이 있는데요. 뉴질랜드에서는 ‘다음에 만나다’라는 뜻으로도 많이 사용됩니다. 친구들과 만난 뒤 헤어질 때, 또는 누군가와 만나자고 이야기 할 때 ‘Let’s catch up soon(곧 만나자)’이라고 표현해 보세요.
오세진 방송작가
출처 : 경기일보(http://www.kyeonggi.com)
http://www.kyeonggi.com/news/articleView.html?idxno=2028391
저희 비전 유학원을 통해 타우랑가에서 2년 정도 조기유학을 마치고 2018년도에 귀국한 가족의 글입니다. 출국준비부터 귀국까지 모든 과정을 상세히 다뤄 조기유학을 준비하시는 가족에게 도움이 될 것이라 여기며 경기일보에 연재된 글을 소개해 드립니다.